구청장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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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천상언
- 작성일
- 2020년 4월 13일
- 조회수
-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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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구청장님께
존경하는 연수 구청장님 코로나 19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신지요
다름이 아니오라 장애인 주민탄압 갑질사연이 있어서 장애특성상 부족한 글로 대신합니다
정확하게 19년전에 연수주공에서 특수한 4인가족 구성원으로서
특수한 4인가족의 생존을 위하여 열심히 행상하며 살아온결과 보다나은 아이들의
미래와 특수한 가족 구성원의 특수성 때문에 이곳 동춘마을 아파트로 자가 이주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 했습니다. 특수한 4인가족 구성원으로서 주택을 소유했다 하여서
4인가족 구성원의 가정이 하루아침에 일반인 아닌 일반인 으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당시 아무런 보호조치도 없이 큰애가 동춘초등학교 3학년 막내가 2살 놀이방에 맏겨놓을 때입니다
이후 어린이집에 다닐적엔 원장님께 사정 말씀 드리면서 아무런 혜택이 없을까 하고 눈물로서 하소연도 했었습니다
원장님께서도 눈물을 보이면서 도움을 못드려 죄송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국민기초생활 및 어린이집
감면혜택까지도 받지 못하고 몇년간을 내 힘으로 살아 가면서 스스로 더욱 강해져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2002년 문학경기장 월드컵 경기가 있을 때 즈음에서 동춘1동에서 행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폭력적으로 단속을 와서 치우라고 하며 물건을 가져갔습니다
옆에서 지켜 보시던 분께서 신분증을 보자고 했습니다
그분께선 형사인 것 같았습니다
그때 형사분이 계속 따지시며 신분증을 요구 하였더니 폭력적인 사람들이 쫓겨 가버렸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폭력행사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내 몸이 계속되는 일반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부담과 무리한 행상으로
힘에 부쳐서 몸에무리가 온 것이었습니다
그래 한달만 쉬자고 생각하고 행상을 접었습니다
그동안의 삶의 무게에 지친 저로서는 한달을 누워 있었습니다
두달 석달이 지났습니다.
긴장이 너무 풀려버리고 체중도 상승되었고 몸이무겁고 힘이들어 12월까지 장애가 악화된 채로
중병에 걸린 사람처럼 계속 일어날수가 없었습니다.
단골 손님께서 막걸리 한병들고 오셔서 왜 장사를 안 나오냐고 하셨습니다
이제 나가야죠 하며 말씀 드렸지만 계속 나가지를 못했습니다
특수한 4인가족 구성원의 특수성 때문 이었습니다 나가야지 나가야지 하면서 계속해서 못 나갔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쳐버린 것이 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니 가족 간의 격려와 칭찬과 돌봄과 영양상태 부부의 장애특성으로 생활실태로 인한
먹고 자고 입고 기본적인 일상 생활의 어려움이 누적 되어온 결과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때나 지금 독수리 타법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이 순간은 죽어서
이 가정이 해체되기 전까지 바뀌지않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있는 당사자입니다
2002년 12월 크리스마스 전후로 기억합니다
장애인 송도 종합복지관에 컴퓨터 기초교육을 받고 동료들과 집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숙제를하고 있었습니다.
1시간이상 컴퓨터 앞에 불편함도 잊은체 숙제를하고 있을때 안방에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마치 서울에서 기다리던 전화가온 것이 었습니다
급한 나머지 쪼그려 앉아있던 몸을 급하게 일어나서 더 빨리 가려다가 지팡이도 안짚고 발을 내딛는 순간 이었습니다
중심을 잡아줘야 할 왼쪽 발바닥이 아닌 발까락이 말려 다리가 전체적으로 절여와 힘이 빠지면서
78k 과체중이 중심을 잃고 그 자리서 엉덩방아 를 찧었습니다
그대로 쓰러 지면서 괴성을 질렀습니다 일행과 식구들도 너무 놀라서 멍하고 있었습니다
119도착 할때까지 정신없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충격의순간 꽁지삐와 허리를 다쳐 급성통증인 것 같았습니다
119차가 도착하여 저의 의식을 확인한 후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너무 사연이 길어질 듯 하여서요
중간생략 하겠습니다. 그런 이후에 수술 날짜까지 잡혔지만…
공교롭게 개인사정으로 수술을 하지않게 되었고요 2003년1월중순쯤 목발에 의지해서 택시를타고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초진결과는 꽁지뼈와 허리 압박골절로 알고 있었습니다
오른쪽 상하 반신불수가 꽁지뼈와 허리를 다치고나니 몸 거동하기도 힘들거니와 5분15분만에 갑자기 급성으로
통증이 올 때마다 놀라서 철부지 아이들에게 화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죽을거 같은 갑작스런 급성 통증으로 힘겨워 할때…
1987년 11월부터 12월까지 일산홀트 체육관에서 장애인 사이클 국가대표 훈련을 같이했던 동료와 초창기
감독님이 갑자기 순간적으로 뵙고 싶었습니다.
주저할 겨를도 없이 저는 그동안 복지관에서 배운 독수리 타법으로 왼손을 빠르게 움직여서
서울시에 뵙고 싶다고 꼭 찾아 달라고 사연을 올렸습니다
며칠후에 이메일 도착 하였고요
저는 감독님과 선수 동료들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습니다 16년만의 만남 이었지요
그래 이거야 왜 진작에 연락을 못했나하고 생각하며 다시 재활운동을 시작 하는거야 하고 결심하였습니다
꽁지뼈와 허리를 다쳐서 장사는 꿈도 못 꾸고 장사할 재료비 현찰도 다 쓰고 없는 상태에서 어쩔수 없이 당사자의
살고자 하는 의지와 힘을 장애인 스포츠 선수로 다시 태어나기로 스스로 용기와힘을 얻게 되었지요
빛을내어서 장비를 감독님의 권유로 구입 하였습니다
재활에 필요한 개인 선수장비와 생활비에 금방 은행빛이 몇백만원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후회해볼 경황없이 감독님의 도움으로 개인훈련까지 우측다리 보조기와 허리 보호대를 착용하고 열훈했습니다
마치 어렸을때 돌아가신 아버님을 뵙는것같이 기쁘고 장애인스포츠 선수로써 최선을 다할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지요
집에서 개인 로라 훈련또한 열심히 했습니다
2003년 드디어 충청도 장애인 전국대회에 서울 삼육재활원 소속으로 출전접수를 했습니다
감독님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사정이 있어서 훈련을 못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몰래 개인훈련을 강행 하였습니다 전철 타고 대방에서 하차하여
63빌딩 고수부지 자전거 길에서 행주대교 인근까지 다녀 오기로 생각하고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맞바람으로 인하여 너무 힘들게 행주대교 인근에 도착 하였습니다
충분한 휴식후에 대방역 까지 되돌아 가기위해 앞으로 출발 하였습니다
등바람이 영향인지 수월하게 힘도 안들고 30킬로 이상의 속도가 예상되어서 순간 저도모르게 머리를숙여 기아를
확인하려는 순간 중심을 잃게되어서 한강돌뚝 담에 처박혀서 얼굴을 맷돌질 하면서 기절해 버렸습니다
뒤에 오시던 분께서 저를 깨우시고 119 신고도 해 주셨습니다 119차가 올때까지 저를 지켜주신 고마우신 분이셨지요
뒤늦게나마 17년전 그때 도와주신 그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강서구 쪽에 정형 외과서 응급치료 를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처음에는 피투성인 얼굴을 알아볼 수가 없었답니다
큰 알코올 병을 찢어지고 깨진얼굴 소독으로 다 없애 고서야 하시는 말씀 이었고요
감독님께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차를 보내셨어요 한강 관리소에 가서 장비를 찾아서 집으로 왔습니다 참 고마웠습니다
그당시 체전이 일주일정도 남아 있었지만 1987년 서울대표 삼육재활원 소속으로 참가이후 16년만의 출전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뼈아픈 경험을하고서 다음해 인천대표선수로 2004년부터 2016까지 뛰었습니다
재활하면서 수많은 뼈부상과 상처를 입었습니다 훈련도중 뒤에서 차에받혀서 갈비뼈를 다쳐 병원치료를 수개월씩 하고요
대회 4관왕하면서 어깨 쇄골을 다쳐서 3개월 입원도 했었습니다
19년동안 부부가 소득 생활을 못하면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치료와 훈련을 병행 하면서
어린 아이들과 살아오다보니 부채가 현재1억에 가까워 졌습니다
금메달을 따고 국가대표가 되었어도 장애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장애특성과 생활실태가
바뀌는 것이 없었습니다 한때 열심히 살았는데도 남는건 과도한빛과 병만 골병든 몸만 남았습니다
오히려 이곳에 살면서 더욱 소외되었고 아이들 또한 부모의 장애특성으로 놀림당하며 학교를 다녔습니다
특수한 가족 구성원의 특성과 생활실태와 자녀교육 때문에 2001년도에 주공에서
현재 이곳에서 살고있지만 오히려 현실은 더욱 냉혹했습니다
틀에짜인 복지법이 저의미래 지향적인 생각을 비웃었고 외면 했습니다
점차 마음의 병이 가까운 사람까지 멀어졌지요
이곳에는 고민 상담이나 어려움을 하소연할 복지 단체나 기타 문을 두드릴 만한 곳이 가깝게 없었습니다
오로지 당사자로서 할수있는 것이 연수 구청장님께 자유게시판 입니다
서론이 길었고요 본론으로 말씀 드립니다
오랜 세월동안 특수한4인 가족구성원의 생활실태 및 영향으로 저의 장애가 많이 악화 되었습니다
5~6월이 되어야 나 조금 바람 쬐러 나갈 수 있습니다
영상 20도 이상 되어야 몸의 강직이나 마비가 조금 풀리는 것 같습니다
19년째 동춘마을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4월 초하루 아내가 한장의 장애인 주차장 사진종이를 가지고 와서 큰일 났다고 했습니다
관리소 지원들끼리 장애인 주차장을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장애인 주차장에 장사할때 쓰던 삼발이 오토바이와 여유공간에 놓아 두었던 장사장비와 재활 운동하려고 준비해놓은
삼륜 전기자전거가 있었습니다
환절기라서 바람이 몹시 세게불어 덮어놓은 포장의 밧줄을 미리 잘라놓고서 이리저리 날리고있는 것을 관리소에서
카메라를 갖고 다니면서 그 모양을 찍어서 과리소 지원들과 여론 조성하여 항상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당사자에게
사진 복사한 것을 또 다른 3자를 통해서 아내에게 주면서 빨리 안치우면 50만원 벌금을
내야한다며 연수구청 6층 노인장애인 담당자한테 가라고 하였답니다
동춘마을 관리소와 연수구청 노인장애인 담당자가 19년 동안 살고있는 아파트주민의 특수한 4인가족 구성원의
특성과 생활실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교통약자로서 사회약자에게 이런식의 공권력으로 폭력 아닌 폭력으로만
해야 하겠습니까 공권력도 권력이라고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동춘마을아파트 관리소장님께서 장애 3급 이라면서…
4년동안 장기집권 하면서 도대체 장애인의 이동권 편의를위해 한일이 고작 이겁니까
인도에 경사로도 몇군데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며…
최근에 주차장 장애인표지및 일부분 차선공사도 벌써 다 흐릿해지고 엄터리 곰사 아닙니까
이루 말할수 없지만 우선 기본적으로 인도경사로 좀 신경써서 공사하십시오
관리소장님께서 장애인이면 최소한의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여서 날씨라도 따뜻해지고 요즘 전염병이라도 잦아들때
당사자한테 환절기 건강상태나 불편사항 같은 것을 물어보면서 이야기로서 대화로써
풀어가야할 문제를 가지고서 관리소장님의 권한으로 이 어렵고 고통스런 시국에 주차장이 응달이고 칼바람따지라
추워서 어떻게 할수없는 곳인데도 할일이 없어서 꼭 그런일을 만들고 꾸미셔야 하겠습니까
19년 동안 살고있는 특수한 4인가족 구성원의 아파트 주민을 마음적이라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폭력아닌
폭력 꼭 이런식으로 해야 하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두세요 장애인이 장애인에게 또 다른 권력행사와 권력갑질 그만하시기 바랍니다
노인장애인 담당자께서는 당사자가 놀라서 그곳 구청까지 갔을때에 장애특성상 강직과긴장으로 춥고떨리는 사람에게
쓴커피 한잔은 커녕 아렛 사람에게 훈계하는 식으로 본인소개도 생략하고서
19년동안 세금잘내고 사는 사람에게 다른 장애인이 차를 못 세우니까 내일까지 치우라고요
당사자 몸 상태도 안 좋고 바람불어서 춥고 코로나 19 때문에 부탁할 사람도 없어서 그러니까 몇칠좀 봐달라고요
두 내외가 장애특성과 생활실태 속에서도 불구하고 몇번 사정해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본인소개도 없이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적었습니다 권한남용 아닌가요
그렇게 다 무시하고 놀라게하며 강압적으로 해야만하는 건가요
뒤늦게 억울하여 부족한 글이지만 장애인의 인권과 권익옹호를 위해 장애인주민 탄압과 갑질 방지를위해
아파트내 인도 장애인이동권 편의경사로 설치를 위해서요
연수 구청장님께 건의 올립니다.
참, 저번에 연수구청에 전동 휠체어 충전기가 20여년이 다 되어서 가끔 충전해 본 결과
50분 가까이 충전해도 완충이 안되고요
낡음으로 인해서 더 충전이 안됩니다 "꼭" 새것으로 개선 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