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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간의 수해지원을 마치고...

  • 작성자
    문영현
    작성일
    2006년 7월 27일
    조회수
    1308
  • 첨부파일





▶1차 지원(7월 16일-19일)
지난 15일부터 강원도 전역에 내린 집중호우는 평창군과 인제군에 특히 많은 인명피해를 냈고 한순간에 가족들끼리도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전쟁터로 만들어 버렸다.
또한 엄청난 물난리 속에 고립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지역 주민들에 대한 신속한 인명구조를 위해 인천소방방재본부에서도 5명으로 구성된 1차 인명구조 선발대가 강원도 수해지역인 평창군 봉평면으로 출발하였다.
선발대는 폭우가 계속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고립된 사람들에 대한 인명구조에 전력을 기울였고 수많은 사람들을 안전한 장소로 구조하였다.
고립된 주민들에 대한 구조 작업이 순조롭게 마무리 되자 이번에는 실종자 수색에 들어갔다.
평창군 일대에 대한 실종자 수색은 강원 영월소방서, 인천과 경기도에서 지원된 구조대원들이 맡게 되었다.
실종자는 봉평면 면온2리에 거주하는 포크레인 기사 이흥래(남,27세) 였다.
이씨는 5톤 트럭에 포크레인을 싣고 마을로 들어오던 중 산사태와 함께 갑자기 불어난 집 앞 흥정계곡의 다리위에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었다고 했다.
이씨에 대한 수색은 몇 일째 계속 되었고
드디어 19일 오전...
이씨가 떠내려간 지점인 면온리 흥정계곡에서 유포리 금강계곡까지 10km가 넘는 거대한 강줄기를 따라 수색을 계속하던 중에 물이 점점 빠지면서 바위 틈새에 끼어있는 신원미상의 사체 1구가 인천과 안양소방서 구조대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하지만 급류와 함께 밀려 내려온 크고 작은 돌들이 사체와 함께 바위 틈새를 막아 거꾸로 박힌 상태에서 하늘로 향한 두 다리만 보일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2차 지원(7월 19일-22일)
16일에 떠난 1차 지원인력을 교대하고자 인천소방방재본부에서 오전 08:00시에 봉고차에 탑승하여 2차 지원 인명구조팀이 강원도를 향해 또 다시 출발하였다.
연일 계속되는 강원도 지역에 대한 방송에서의‘수해’보도 때문인지 영동고속도로는 한산했고 3시간이 조금 넘은 11시 30분쯤에 평창군 봉평면사무소에 도착했다. 면사무소 주차장은 빠른 수해복구를 위해 지원나온 군 병력과 민간 자원봉사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식사를 위해 몇 일째 봉사하고 있는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이 챙겨주는 따뜻한 점심을 먹고 1차 지원인력이 사체를 꺼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유포리 금강계곡으로 다시 출발하였다.
수해지역의 참상은 TV에서 본 것 보다 휠씬 더 참혹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고 마을 전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도 있었다.
금강계곡에 도착한 2차 지원인력은 계양소방서 구난차량에서 슈트를 착용한 뒤 로프를 어깨에 걸치고 금강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사체 확인 지점은 계곡에서도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했다.
험난한 지형으로 인해 사체 인양에 필요한 중장비는 들어올수도 없는 지점이었다. 인양 현장 근처에는 지역주민 30여명도 나와 있었다.
선발대로 출발하여 4일째 고립인원 구조와 실종자 수색을 하느라 많이 지쳐있는 인천 구조대원들과 최경식 선발대장님의 모습이 보였다.
1차 지원인력은 많이 지쳐 있었고 바위 틈새에 박힌 사체를 꺼내는 작업은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 같아 2차 지원인력이 사체발굴 및 인양작업을 맡아서 하기로 하고 유포리 금강계곡에서 임무교대를 하였다.
오후 1시...
금강계곡 현장에는 지원 나온 소방인력이 많이 있었지만 몇 일째 계속된 실종자 수색에 모두들 지쳐있었고 쉽지 않아 보이는 사체 발굴 작업 앞에서 어느 누구도 팔 걷고 나서지 못한 채 주저하고 있었다.
중장비가 꼭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기다릴 순 없었다.
인천소방 구조대원들은 인솔자인 박상일 구조대장님의 지휘하에 무엇부터 작업을 시작해야할지 주변상황을 둘러보았다.
바위 주위로 위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로 인해 발굴 작업을 하는데 있어 장애가 많았다.
대원들은 주위에 서 있는 주민들에게 비닐을 구해다가 막고 물이 흘러내려오지 않도록 돌을 쌓아 달라고 부탁했다.
호미로 사체 주변의 작은 돌부터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다.
5일째 바위 틈새에 끼어있는 사체는 흙속에 매몰된 것보다 부패 속도는 느렸지만 시간이 많이 경과하여 코를 찌르는 매캐한 악취가 진동하였다.
사체 인양작업에 매달린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위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막아졌고 두 시간이 지나서야 신원 미상인 남자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하지만 갈 길은 멀었다. 엄청난 무게의 바위가 목부터 얼굴을 짓누르고 있었고 그 사이에 또 크고작은 돌들이 벽돌 끼워 맞추듯 정교하게 끼어있는 것을 알고 인천 구조대원들도 서서히 지쳐갔다. 하지만 물을 마셔가며 작업은 계속되었다.
우선 지렛대로 바위 주위의 큰 돌들을 조금씩 움직인 뒤 로프로 바위를 묶어 당겨 바위 주위에서 장애물이 되는 큰 돌을 모두 치워 공간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얼굴을 짓누르고 있는 큰 바위마저 바위틈에서 힘겹게 빼내자 드디어 사체가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오후 4시 30분...
작업을 시작한 지 3시간 30분 만에 발굴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사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씨의 가족과 친지들이 금강계곡으로 달려와 확인작업을 했다 사체에는 한쪽 다리를 수술한 적이 있는 상처의 흔적과 손가락에 낀 금반지가 유독 눈에 띄게 보였다. 나이도 많아 보였다.
정신없이 달려온 가족들은 이씨가 아니라고 고개를 젓고 허탈해하며 돌아갔다.
경찰 확인결과 신원미상의 이 남자는 봉평면 이목정리 주민 신동규(남,57세)였다.
가족들과 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가던 중에 가족들은 급류를 보고 두려움에 중간에 내리고 신씨에게도 건너지 말라고 말렸지만 신씨가 끝내 차를 운전하고 다리를 건너다가 안타깝게 급류에 실종되었다고 했다.
교대 첫날 오자마자 바위에 낀 힘든 사체 발굴에 지친 대원들은 작업을 마치고 몸을 씻을 곳을 찾았다. 계곡에 흐르는 강물은 아직 더러운 흙탕물이었지만 그나마 유포리 마을 도랑물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은 맑았다.
슈트를 벗고 대충 몸을 씻고 나서 구조복으로 갈아입은 뒤에 봉창면사무소에 도착할 즈음....
휴대폰이 울렸다. 사체 한 구를 또 찾았으니 빨리 오라는 전화였다.
면온리 흥정계곡에서 실종된 이씨였다.
동네친구들이 몇 날 몇일을 찾아 헤맸지만 발견되지 않자 마을에 있는 점집을 찾아가 점을 쳤더니 무당이 점괘를 보고 마을 근처에 묻혀있다고 했고 친구들은 무당의 말을 믿고 마을 주변을 찾아 헤매던 중 나무 숲 밑에 매몰되어 있는 이씨를 조금 전에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대원들은 구난차량을 타고 봉평출장소 구급차량의 안내를 받아 면온리로 달려갔다. 이씨가 발견된 지점은 아직도 물이 가로막고 있었고 대원들은 봉평소방출장소 구급대원들과 들것을 가지고 매몰 지점까지 물길을 건너갔다.
휩쓸려 내려온 나무뿌리와 흙속에 매몰되어 있는 이씨를 마을주민들과 파내어 꺼내 놓자 이씨의 친구들이 사체를 들고 물가로 나가서 온몸을 깨끗이 씻어 주었다.
현장에 급파된 병원 장의사가 사체를 비닐로 쌓은 뒤 대원들은 이씨의 친구들과 사체를 들것에 고정시켜 구급차량에 인계하였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마치고 봉평면사무소로 돌아와 면사무소에서 제공해 준 수해로 잠시 휴업중인 대중목욕탕 탈의실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20일 이틀째...
봉평면 일대에서 실종된 주민은 모두 찾았기에 아침을 먹고 도암면으로 향했다.
대관령에 있는 도암소방출장소에 들러 직원의 안내를 받아 용산리로 향했다.
용평스키장에서 산길을 따라 한참을 더 올라가자 용산2리 실종지점에 다다랐다.
지난 15일 횡계5리에서 살고 있는 아들 남덕기(남,31세)가 의붓아버지인 김충렬(남,61세)과 농경지에서 농약살포 중에 산사태로 매몰된 트렉터를 꺼내다가 꺼낼수가 없자 김씨가 먼저 걸어서 집으로 가겠다고 내려간 뒤 실종 되었다고 했다.
대원들은 슈트를 갈아입고 용산2리-용평계곡-싸리재에 이르는 계곡길을 따라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끊어진 마을의 다리에는 통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잔목과 쓰레기들이 빼곡히 엉켜있어 사체의 모습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고여 있는 곳은 물이 깊었고 떠내려 온 부유물들로 악취가 진동하였다.
대원들은 유속이 빠른 계곡을 양쪽으로 나눠 가로질러 내려갔다.
의심이 나는 곳은 꼼꼼히 헤집고 살펴보았다.
용평리조트 계곡 아래로 내려가자 피해는 더 심각했다.
주차 차량 120여대 가량이 휩쓸려 내려갔고 리조트 일대 마을은 폐허로 변해 있었다. 스키장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골프장 잔디 보수작업과 리조트 일대를 청소하느라 하루 종일 분주해 보였다.
오후 5시가 넘도록 실종자 찾기에 진전이 없자 내일 다시 하기로 했다.
대원들은 도암면사무소에서 마련해준 작은 여관방에서 이틀째 밤을 맞았다.

21일 사흘째....
용산리 일대에 대대적인 군병력 투입과 함께 실종자 수색에 박차가 가해졌다.
어제에 이어 또 다시 용산2리-용평계곡-싸리재에 대한 집중적인 수색이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실종자 찾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너무나도 많은 흙더미가 급류와 함께 계곡 아래로 쓸려 내려가 어디에 매몰되어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고 인천에서 지원 나온 구조대원들은 싸리재 계곡과 합류하는 횡계리-수하댐까지 수색 범위를 넓혀 나갔다. 강을 따라 댐까지 걸어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물길이 막혀 더 이상 흐르지 않는 수하댐 상류까지 내려가자 모래가 쌓여 물이 무릎밖에 차지 않았다.
드넓은 댐 상류부터는 도저히 수색이 불가능했기에 수색을 종료하고 다시 출발지점으로 돌아왔다. 내일까지도 실종자 김씨를 찾지 못한다면 경기도와 인천에서 지원 나온 구조대원들은 돌아가기로 결정이 났다.

22일 지원 나흘째...
실종지점 1km 전방에 도로까지 산사태가 밀려 내려온 부근에서 김씨가 지나가려고 하는 것을 봤다는 지역 주민들의 제보가 들어왔다.
대원들은 면사무소에 굴삭기 두 대를 지원 요청하여 도로 옆 계곡아래에서부터 파내어가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김씨가 신고나갔던 장화 한 켤레가 흙속에서 나왔다. 군부대에서도 탐지견 한 마리가 지원되어 토사가 쌓여있는 지점 곳곳을 코를 땅에 대고 맡아가며 실종자를 찾기 시작했다.
오전 내내 의심되는 지점을 굴삭기로 파내려 갔지만 사체의 흔적은 없었다.
영월소방서에서 지원된 김밥 도시락을 점심으로 먹고 다시 수색을 할 때였다.
토사가 흘러내린 산 계곡위로 올라갔던 가족들이 김씨가 입고 있던 반바지를 들고 뛰어 내려왔다. 산 위쪽 계곡에서 반바지를 발견했다는 것이었다.
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작은 계곡을 따라 산 위로 뛰어 올라갔다.
돌무더기가 쌓여진 의심난 곳은 대원들이 일일이 냄새를 맡아가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산의 5부-6부 능선 계곡까지 올라갔을 즈음..
나무와 돌로 쌓인 지점 곳곳이 눈에 들어왔다.
사체 썩는 냄새가 조금씩 확인되었다. 모두들 분명 이곳에 묻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대원들은 장갑을 끼고 돌과 나무들을 하나씩 치우기 시작했다.
잠시 후 모자가 발견되었다. 가족들에게 확인시키니 실종되던 날 아침에 쓰고 나간 모자가 맞다고 했다. 파리들이 매몰된 나무더미 틈사이로 날아 들어가는 지점을 집중적으로 파내었다.
마침내 실종자의 머리부분이 드러났다.
도로가 계곡물에 흘러넘치자 산을 올라와 건너려고 높이 올라왔다가 매몰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가족들에게 원주병원으로 먼저 가 있으라고 내려 보낸 뒤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대원들은 구난차에서 톱을 가져와 사체를 얽어맨 나무들을 톱으로 하나씩 제거한 뒤에 자갈돌을 손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김씨의 상체는 노란 우의가 입혀져 있었지만 하의는 모두 벗겨진 채 부패되고 있었다.
나무와 돌무덤속에 묻힌 실종자를 꺼내 비닐에 싸고 들것에 사체덮개와 붕대로 고정 시킨뒤에 계곡을 내려왔다.
실종된 지 8일 만에 찾아낸 김씨를 병원 구급차량에 인계하면서 7일간의 실종자 수색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강원도 일대에서 오늘까지 찾지 못한 실종자 수는 17명이었다.
사체만이라도 찾아달라며 오늘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 실종자 수색은 계속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해마다 반복되는 가슴 아픈 수해의 악몽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신속한 복구에 앞서 사전 대책 또한 철저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안고 7일간의 수해지역 인명구조와 실종자 수색지원을 마치고 인천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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